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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고향,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품고 있는 히말라야 산맥. 멀게만 느껴지던 그곳에 도전장을 던진 특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운증후군과 자폐증 등을 앓고 있는 5명의 장애인이 험하디 험한 산에 오르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미영 : "항상 데리고 다니면 느려요. 많이 느린데 그냥 끝까지 가야된다고. 서울에서도 어디 가면 끝까지 다녔거든요. 늦긴 늦어요. 많이 늦는데...그러니까 달팽이 원정대니까 천천히 가도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단 온다고 마음을 먹었었고..." 몸과 마음이 불편한 이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는 뭘까? <리포트> 얼마 전 박영석 대장 일행이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됐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지만 비슷한 시기, 5명의 장애인들이 히말라야 산길을 따라 걷는 대장정에 도전했습니다. 지적장애인 4명과 뇌병변장애인 1명, 그리고 이들을 돕는 비장애인 8명으로 구성된 달팽이 원정대원들의 도전기를 취재했습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로 40분, 경사진 활주로가 인상적인 히말라야의 관문 루클라 공항에 도착합니다. <인터뷰> 김태삼(달팽이 원정대장) : "식사를 많이 하면 안 돼. 적당히 자가 양껏 맞춰서 먹어야되고. 또 산에서는 너무 빨리 걸으면 안 돼. 나를 앞질러 가면 절대 안 되는 거야. 더 천천히 걷고..." 해발 2840미터 루클라는 백두산보다도 100미터 정도 더 높습니다. <인터뷰> "(기온이) 많이 떨어졌죠. 밑에는 더웠는데 지금은 저녁 온도 같아요. 카트만두의 저녁 온도 같아요. 고지대라서 그런가..." 부푼 희망을 갖고 첫발을 내딛는 원정대원들. 시원한 바람에 흥얼흥얼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칩니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19살 전서연 씨. 엄마와 떨어져 여행을 떠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인터뷰> 전서연(다운증후군) : "힘들어도 소중하게 갈테야. (올라가는 시간이 소중할 것 같아?) 네. (엄마 보고 싶어? 집에 가고 싶지 않아?) 에휴..." 편안했던 집이 그립지만 홀로 걷는 이 순간 역시 소중하다는 것을 서연 씨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운증후군과 자폐증, 뇌병변 장애를 안고 있는 이들에게 히말라야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 <인터뷰> 전서연·정재승 : "저희는 쉬었다 갈 거예요. (그래도 지금 가야돼.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가고 싶죠 집에. 아이고 등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죽겠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마을과 출렁이는 흔들다리를 지나 길을 걷길 6시간, 원정대는 칠흑같은 어둠이 내리고서야 첫째날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자폐증이 있는 23살 김일두 씨. 오랜 산행에 지친 표정이지만 의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인터뷰> 김일두(자폐증) : "(오늘 고생 많이 했어요?) 많이 했어요. (일두 화이팅!) 화이팅."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18살 권순상 군은 선두 그룹보다 2시간 늦게 산장에 도착합니다. 다른 다운증후군 장애인처럼 평발인데다 비만까지 겹쳐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습니다. <녹취> 임성휘 : "오늘 파이팅 해서 너무 수고했지? 오늘 가슴 아픈 거 다 잊어버리자. 단장님 한 번 안아줘. 수고했어." 목적지는 셰르파의 고향이자, 히말라야를 찾는 모든 사람들이 고소 적응을 위해 휴식을 하는 남체 바자르. 셰르파들은 단 하루 만에 주파하기도 하는 짧은 거리지만 달팽이 원정대에겐 얕잡아볼 수 없는 먼 길입니다. 게다가 내리막 길이 더 많았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팍딩에서 남체까지는 험난한 오르막 길의 연속입니다. 조르살레로 가는 길. 멀리 해발 6천6백 미터 탐세르쿠의 웅장한 자태가 원정대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며칠 만에 제법 친해진 대원들은 어제의 피로를 모두 잊었다는 듯 서로 장난을 치며 휴식시간을 보냅니다. 다시 시작된 대장정. 끝없이 이어진 길이 원정대의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돼 열병을 앓다가 뇌에 손상을 입은 21살 정재승 씨. 험한 길을 걷는 아들을 보며 걱정을 놓지 못했던 어머니 유영희 씨도 오늘만큼은 아들이 무척이나 자랑스럽습니다. <인터뷰> 유영희(정재승 씨 어머니) : "(아들 어디다 두고 이렇게 혼자 가세요?) 아들이 저보다 먼저가고 있네요. 아직까지는 싱싱한 거 같아요. 우리 재승이. 너무 염려했는데 너무 잘해줘서 엄마 입장이 너무 좋아요." <인터뷰> 정재승(지적장애인) : "(힘들진 않아요?) 네, 괜찮아요. 저는 건강하니까. 우리 엄마는 힘들어요. 우리 엄마는 약해요." 팍딩에서 4시간 남짓, 원정대는 이곳 조르살레에서 밤을 보내기로 합니다. 산장 한켠에선 저녁 식사 준비가 한창인 시간, 자녀들을 따라온 어머니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인터뷰> 김지영(달팽이 원정대 자원봉사자) : "어떤 분들은 왜 도와줘야 될 거 같고 우리보다 훨씬 많이 도움이 필요할 거 같다라고 생각을 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중요한 게 걔들도 다 할 수 있다는 거를 너무 모르는 거예요." <인터뷰> 유영희(정재승 씨 어머니) : "부모에 대한 선입견도 많아요. 우리가 봤잖아요. 그죠? 의외였죠? 근데 대부분 밝아요. 근데 의사 선생님들이 와가지고 엄마들 서있으면 굉장히 말을 안 하고 있어요. 왜 그래요 하면 엄마들이 침울해 하고 있을까봐 자기가 웃지를 못한데요. 그 선생님들은. 그러니깐 선입관이 그게 굉장히 많아. 장애에 대한 선입관. 부모에 대한 선입관." 둘러앉아 함께 먹는 저녁. 원정대를 돕는 현지 가이드가 손수 요리한 한국 음식이 나옵니다. <녹취> "재승아, 천천히 먹어야 돼!" <녹취> "종일 하는 소리가 천천히 밖에 없어!" <녹취> "응, 천천히 밖에 없어 난!" 어느덧 산장엔 어둠이 내리고, 대원들은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손 글씨로 편지를 보냅니다. <인터뷰> 전서연(다운증후군) : "엄마 아빠 잘 그동안 지냈어? 엄마 보고 싶어서 미치겠어. 꼭 마중 와서 데려가주세요. 감사합니다." 남체로 떠나기 앞서 원정대는 준비운동을 하며 마음가짐을 다잡습니다. 수 킬로미터에 걸쳐 급경사가 이어지기 때문에 전문 산악인들에게도 난코스로 꼽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네팔의 소년들이 수십 킬로그램 짐을 이고 가는 길, 원정대원들도 달팽이처럼 각자의 짐을 지고 목표를 향해 천천히 걸어갑니다. 20년 전 뇌출혈로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됐던 58살 김갑진 씨. 불편한 다리로 원정길에 올랐고, 드디어 멀리나마 에베레스트의 신비로운 자태를 눈으로 확인합니다. <인터뷰> 김갑진(뇌병변 장애인) : "여기 사람들 왔다 갔다 하는 거. 전부 다 여기 히말라야 고봉을 보려고, 에베레스트를 보려고 오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생각할 적에...참 나도 그 중에 일원이 됐구나 싶은 생각이 세계인이 된 기분입니다." 제 뒤로 보이는 저 봉우리가 바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입니다. 지금 이곳의 고도는 3175미터, 이제 대원들은 본격적인 고산병과의 싸움을 시작하게 됩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산소는 희박해지고, 대원들은 더 빨리 지쳐갑니다. 해발 3440미터 셰르파의 고향 남체에 도착한 원정대원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첫날부터 뒤처졌던 권순상 씨에게 고산병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카트만두에서 들어온 온갖 물건이 이곳에서 팔려나가고 산속 마을에서 생산된 특산품 역시 이곳을 통해 교역됩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시장이란 뜻의 '바자르'입니다. 수많은 관광객들 앞에서 달팽이 원정대는 한국을 알리는 야심찬 공연을 펼칩니다. 한 달 넘게 준비했지만 장단은 제멋대로. 그래도 지금 이순간, 이곳 남체바자르에서 만큼은 이들이 대한민국 대표입니다. 조금은 어설픈 실력이었지만 이들의 뜨거운 열정에 관광객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공연을 끝낸 뒤, 남체에서 방향을 돌려 다시 팍딩으로 돌아온 원정대. 이 때 전해진 박영석 대장 일행의 실종 소식에 크게 술렁대던 원정대의 분위기는 이내 침울해집니다. 히말라야에서의 마지막 밤을 위해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지난 한 주는 이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인터뷰> 김일두(자폐증) : "(동료들이랑 같이 걸어갔잖아. 제일 고마운 사람이 있어 혹시?) 경모 선생님. (경모 선생님이 뭐가 고마워요?) 경모 선생님이 올라가는 거, 딱, 올라가는 거 간식도 주시고 먹었어요." <인터뷰> 성경모(달팽이 원정대 자원봉사자) : "장애인들이랑 같이 가면은, 그런 큰 편견을 가질 수 있는데 전 솔직히 일두를 저는 남동생이 없거든요. 진짜 남동생이 하나 생긴 거 같은 진짜 너무나 큰 거를 얻은 거 같은 그런 기분이에요." <인터뷰> 유영희(정재승 씨 어머니) : "여행을 하면 엄마를 많이 의식을 하거든요. 엄마가 뒤에 쫓아오나. 엄마가 하라는 데로 해야지 이런 거. 그런데 이번 여행은 자기 의지대로 앞에 있는 선두 그룹을 쫓아갔고, 그런 게 많이 변한 거 같아요. 혼자 독립성이 길러졌다고 할까. 대견스러워요." 자신의 보금자리를 떠나, 자신을 옭아맸던 편견의 시선을 떨치고, 세상을 향해 예민한 더듬이를 뻗은 달팽이 원정대. 조용하게, 그리고 느리게 시작한 이들의 도전은 이제 모두와 더불어 살아가야 할 우리 사회에서 계속될 것입니다. 진짜 도전은 지금부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