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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를 맞은 서울 용산역. 선물 꾸러미를 든 귀성객들로 북적입니다. 고향으로 이어지는 길 철도, 여전히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이기 때문에 가장 인기 높은 교통수단입니다. 고속철도 있지만, 산간 벽지를 다소 느긋하게 달리는 기차는 정겹고 아름답기만 합니다. 그 여정의 중간. 군데 군데 자리하고 있는 간이역. 마치 인생의 쉼표 마냥 여유와 사랑이 배어나고 아름다운 추억이 스며있습니다. 개발과 고속화에 점차 밀려나고 있는 간이역. 그러나 그곳에는 아직도 기차에 대한 소중한 추억과 아름다운 이야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기자 멘트> 이땅에 열차 기적 소리가 울린지 오늘로 꼭 112년이 지났습니다. 열차는 중요한 교통 수단으로 서민들의 발이 돼 추억과 애환을 가슴속에 아로새겨왔습니다. 열차가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 간이역에 담긴 풍경과 삶을 들여다 봤습니다. <리포트> 서울에서 기차로 1시간 남짓. 회색빛 건물들을 뒤로하고 남동쪽으로 달리다보면 시골 간이역이 있습니다. 철길에 내려 앉은 가을 햇살의 아늑함에 마냥 조는 듯한 간이역. 끝없이 내달릴 것만 같은 철길.. 땅을 울리며 기차가 들어오면 그때마다 간이역은 잠시 활기를 뜁니다. 하지만 하루 5번 기차가 잠시 머무르다 떠나면 간이역은 다시 정적에 휩싸이고 그 공간을 구름과 나무 풀벌레와 바람소리가 채웁니다. 번듯한 국도도,버스도 없는 곳 이곳 마을 주민들에게 간이역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머리에 얹고 깊은 산을 병풍삼아 내달리는 기차. 기차가 서지 않는 철길 옆에 허름한 벽돌집이 있습니다. 이곳은 한때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내리던 임시 승강장의 대합실 이었습니다. 지금은 당시 서민들의 애환을 아는지 모르는지 땔감을 쌓아두는 자재 창고로 변했습니다. 80대 노인은 대합실 옆에 있었던 주막집을 개조해 별장으로 사용하고있습니다. 남들 눈엔 기찻 길옆 오막살이 같지만 노인에겐 더 없이 안락합니다. <인터뷰> 노인 : "이게 뭐냐면 의자,막걸리 옛날엔 주전자에 퍼주면 돌아앉아 술 먹잖아요. 쭉 돌아서 술 먹던 장소,그 때 있는 그대로야..." 별장 지기 노인은 서지도 않고 지나가는 무심한 열차에 손을 흔들며 그 옛날 기차에 어려있던 추억들을 떠올립니다. <인터뷰> 노인 : "역이 있었는데 집이 다섯집이 있었어. 매점이라고...옛날 술집, 과자 같은거 파는 매점이고, 여기 전파 두개 있었어요. 여기 사람이 얼마나 많이 타고 내렸는가. 이 역을 하루 이용하는 손님이 한 300명 돼요." 산 첩첩, 물 겹겹 속세를 뒤로하고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가는 열차가 잠시 머무는 곳. 이른 아침 짙은 안개와 강물 소리. 흐드러지게 핀 국화 꽃이 정겨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곳에 간이역이 있습니다. 높 푸른 가을 하늘을 머리에 얹은 양철 지붕, 그리고 그 곁에 농기구 창고와 같은 곳이 대합실입니다. 나무판에 적혀있는 글씨를 보아 이곳이 기차역임을 알 수있습니다. 하루 4번 기차가 잠시 머무는 곳. 타는 이도, 내리는 이도 없이 기차가 무심하게 떠나면 순록의 산 빛과 깊은 물소리만이 남습니다. 원래 열차가 서지 않던 이곳은 지난 88년 산골 주민들이 직접 임시 승강장을 꾸미고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주민들의 정성 덕분에 기차는 그때부터 정차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할머니 : "도배하고 위에 천장이라던가 하는거 이제 전부 동네에서 돈을 모아서 영주가서 재료를 사가지고 와서 했죠." 산골의 어둠은 그 어느곳보다 빨리 다가 옵니다. 만남과 떠남의 이중주가 끝나고 마지막 열차가 칠흙같은 어둠을 헤치고 사라지면 역무원이 혼자 남아 간이역을 지키게 됩니다. 간이역을 비추던 마지막 불빛 마저 꺼지면 간이역은 시간이 멈춘 정적속으로 빠져듭니다. 사람들에겐 잠시 스쳐가는 역이지만 25년 철길 인생을 달려온 역무원에겐 인생의 전부가 됩니다. KTX와 무궁화 열차가 교차하는 마을의 간이역. 조용한 역이 분주해지면서 사람들의 사연도 더 많아졌습니다. 하루 두번 열차가 정차하는 이곳. 마을 주민들에겐 기차와 역에 대한 절절한 사연이 가득합니다. 산골 간이역 아이들은 철길과 더불어 태어나고 또 자랍니다. 그리고 지나고 보면 모두 추억이 됩니다. 변변한 놀이터가 없는 산골 아이들에게 역 광장은 더할 나위 없는 놀이텁니다. 저 육중한 기차가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 주길 꿈꾸는 곳. 어머니의 전송을 받으며 외지로 나가 꿈을 펼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버진 뜨거운 가을 햇살 아래 비닐 하우스에서 우엉을 심고 캐면서 도시에서 공부하고 있는 자녀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 한 가득입니다. 부부는 밤 늦도록 농산물을 다듬고 장만하여 대도시 시장으로 나가 팔 채비를 서두릅니다. <인터뷰> 어머니 : "얘들 학교 다녀서 대학생이고 그래요. 이렇게 벌어가지고는 못 해요. 이거보다 더 잘 벌어야 되는데..." 대학생 자녀 둘을 둔 시골 마을 부부의 하루는 고단함도 모른채 그렇게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다음날, 남편의 경운기를 타고 간이역에 도착한 아내는 도시에서 팔 농산물을 챙기며 분주 해 집니다. 이 역은 이처럼 저마다 가져온 물건들로 넘쳐나면서 모처럼 활기를 띕니다. 아침 7시 17분 오전 한대 밖에 없는 대전 방향 기차가 간이역으로 들어오자 저마다 이고 지고 온 짐을 분주히 열차에 싣고 장터로 향합니다. 열차내에서 농산물들을 하나라도 더 팔려는 아낙들의 흥정. 이런 부산스러움을 싣고 열차는 대전역으로 향합니다. 역앞 광장에서 치열한 자리 싸움 끝에 어렵사리 차지한 좌판. 대부분 도시에서 공부하는 아들 딸들의 학비에 보태지는 것들이어서 어느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들이 없습니다. 가을비가 간이역을 적십니다. 녹슨 선로는 온 몸으로 보슬비를 받아 냅니다. 선로위에 흩어져 내리는 비. 이내 천둥과 번개가 주변을 뒤 덮으며 한동안의 적막을 깨웁니다. 병풍처럼 둘러진 산을 등에 지고 간이역은 하루 7차례. 열차를 맞습니다. 하루 승객이래 봤자 겨우 너 댓명. 추석 명절이라지만 타고 내리는 승객이 별 반 없기는 매한가집니다. 추석을 맞아 기찻길 옆, 밭을 일구며 한평생을 살아온 노부모를 찾은 아들에겐 간이역은 언제나 고향, 그 자체입니다. 그 옛날, 도회지에 있는 학교로 갈때나 직장을 찾아 떠날때도 간이역은 노부모의 배웅을 받으며 떨어지지 않던 발걸음을 돌렸던 곳입니다. <인터뷰> 아들 : "부모님이 아직 여기 계시고 하니까 고향은 부모님의 품하고 같잖아요. 포근함, 아련한 추억들도 가지고 있고요. 그래서 되게 좋습니다." 떠난 뒤 다시 돌아온 아들도 있지만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들의 마음속에 간이역은 애달픈 한으로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일제 강점기때 징병을 떠났던 젊은이들이 그랬고, 한국 전쟁때 전선으로 떠난 청춘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간이역은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의 품과도 같은 곳입니다. 사람과 세상을 이어주고, 길 떠나는 자와, 돌아오는 자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 간이역은 시간과 사연을 간직한채 오늘도 사람과 기차를 기다리고, 또 보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