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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0년 전 오늘은 70여 명의 대학생이 서울 미 문화원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바로 그 날입니다. 이 사건이 가진 의미를 돌아봅니다. 이병도 기자입니다. ⊙기자: 광주의 진실이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던 1985년 5월. 서울지역 5개 대학생 73명이 미국문화원을 기습 점거했습니다. 광주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반미구호가 거침없이 터져나왔습니다. 일종의 금기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이정훈(민주노동당 중앙위원/당시 점거 농성자): 광주 문제의 실질적인 몸통이 실체가 미국이 아닌가 이런 문제들이 저변에서 제기되었던 상황이고요... ⊙기자: 72시간에 걸친 농성은 학생들이 자진해산하면서 끝이 났지만 당시만 해도 미국을 우방으로만 여겼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그리고 이를 시발점으로 92년 윤금이 씨 피살사건을 거쳐 2002년 여중생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반미운동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운동의 한 축을 이뤘습니다. ⊙이강백(아름다운 가게/당시 점거 농성자): 누구도 미국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실. 미국에 대한 문제제기는 대단히 금기 중의 금기였던 상황이었고... ⊙기자: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당시의 주역들이 20년 만에 다시 모였습니다. 점거농성 이후 이들 대부분은 운동 현장을 지키며 투사의 삶을 이어갔지만 지금은 다양한 사회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시민운동가로 또는 미국의 공인회계사로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듯하지만 당시 사건은 모두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윤영상(민주노동당 정책위부의장/당시 점거 농성자): 거의 동일한 상황에서 동일한 정도의 내가 삶을 살았다고 한다면 불가피한 선택, 아마 다시 또 그런 상황에 태어난다면 역시 마찬가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 ⊙기자: 그러면 반미운동의 주역이었던 이들에게 20년이 지난 오늘 미국은 어떤 모습일까. ⊙이치선(변호사/당시 점거 농성자): 당시에 우리가 제기했던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당시의 문제제기는 정당했다라고 보고 그러면 얼만큼 해결됐느냐, 해결된 것은 별로 없다... ⊙기자: 하지만 보다 균형잡힌 시각에서 미국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강백(아름다운 가게/당시 점거 농성자): 문제를 당당하게 제기할 때는 제기하고 또 같이 협력하고 같이 문제제기해야 될 것은 함께 문제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20년 전 미 문화원 점거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던 이들에게 친미와 반미, 용미가 엇갈리는 오늘의 시대적 상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습니다. KBS뉴스 이병도입니다.